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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뇌에 여백을 줄 시간

20세기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보통사람은 뇌의 10%를 사용한다”고 했다. 천재였던 아인슈타인조차 뇌의 15%밖에 활용하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이제 참신하지도 않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10%의 뇌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1. 사실 뇌는 모든 공간을 쓰고 있다.

영화 ‘루시’에서는 인간이 평균 뇌의 10%만을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약물을 통해 10%를 넘어 뇌의 20%를 사용한다면 자신의 신체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40% 사용한다면 타인을 조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뇌의 10%만을 사용한다는 영화의 설정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사실 사람은 뇌 대부분을 알차게 사용하며 살아간다. 영화 속에서 뇌를 10%만 사용한다는 것은 실제 뇌 사용량보다는 뇌의 최대 성능 대비 현재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지만 전체 산소 소비량의 20%를 차지한다. 뇌가 단지 10%만을 사용된다면 전체 산소 소비량의 20%를 차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즉, 뇌는 나머지 부분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쓰지 않는 것이다. 
뇌는 크게 대뇌, 뇌간, 소뇌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약 1,000조 개의 시냅스를 갖는다. 그중 대뇌는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 해마로 이루어져 있고, 뇌간은 간뇌, 중뇌, 교뇌, 연수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뇌의 모든 기관들은 각자 맡은 일이 있으며 그 일이 필요할 때 활성화된다. 

전두엽은 기억력, 사고력 등의 고등행동 관장, 정보 조정, 행동 조절의 역할을 한다. 두정엽은 운동명령을 내리는 운동중추, 체감각(촉각, 통증 등)의 처리 관여, 피부, 내장으로부터의 감각 신호를 담당하는 역할을 한다. 측두엽은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후두엽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해마는 내측두엽과 함께 장기기억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뇌 지도'를 만들어 인간의 뇌세포가 어떻게 연결되고, 정확히 어떤 일을 맡은 것인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를 밝혀내려 하고 있다. 뇌 지도를 만들려는 노력은 뇌의 모든 부분을 연구하고 밝혀내는 것으로 우리 뇌에 잉여적인 부분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뇌 지도를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앞서 말했듯 뇌의 세포는 천억 개로 이루어져 있고 1,000조 개에 달하는 시냅스가 있기 때문에 그 연결들을 정확히 그려내는 것은 어렵다. 실제로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3년 뇌 지도를 만들기 위해 10년간 30억 달러에 달하는 사업을 추진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는 못했다.

 

2. 그럼 뇌는 어떻게 운영 되는가

뇌가 어떤 운영방식을 갖는지를 알아보면 뇌의 여백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먼저 뇌에는 조정신경망(task-positive network), 비조정신경망(task-negative network)이라는 두 가지 체계가 있다. 조정신경망은 우리가 어떤 일에 몰두할 때 활성화되고 비조정신경망은 공상, 잡념을 할 때 활성화된다. 이 두 신경망이 동시에 활성화될 수는 없고, 서로 전환하며 뇌가 운영된다. 이 운영방식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우리를 상상해보자. 문제에 집중하여 열심히 풀고 답을 고르고 있는 순간에는 조정신경망이 활성화된다. 이렇게 열심히 문제를 풀던 중 정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결국 풀지 못하고 숨 좀 돌릴 겸 산책을 나왔다. 한참 산책을 하며 쉬고 있다가 갑자기 머리에 전구가 켜지며 아까 풀지 못했던 문제의 풀이 방법이 떠오른다. 이때 활성화되는 것이 비조정신경망이다. 비조정신경망은 흔히 창의성과 공감 능력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한다. 뉴턴이 사과나무에 앉아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며 갑자기 만유인력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비조정신경망이 활성화된 결과이다. 

이렇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뉴턴의 이야기는 거짓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뉴턴은 사실 중력에 대해 수많은 시간 동안 고민해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두 신경망으로 번갈아 가며 뇌가 운영되는 것은 인간의 엄청난 능력 중 하나이며 이 두 신경망이 골고루 활성화되어야 뇌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발달한다. 
이 두 신경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뇌 과학에는 디폴트(default)라는 이론이 있는데, 위에 나왔던 비조정신경망이 디폴트 네트워크라고 불린다. 디폴트 상태는 뇌가 어떤 일을 할 때 활동이 감소했다가 쉬는 중에는 활동이 증가하는 상태이다. 즉,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생각을 하거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뇌는 디폴트 상태가 된다. 조용히 대기하면서 다음에 일어날 업무, 일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에는 한계가 있어서 과다한 정보로 뇌가 쉬지 못하면 디폴트 상태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어느 날 과도한 업무 등으로 인해 조정신경망만이 활성화되어 비조정신경망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면 뇌는 다음 날 업무를 위한 대비를 하지 못하고 막상 업무에 당면해서야 어떻게 할지 결정하게 된다. 이것이 하루하루 반복되어 결국 뇌는 쉬지 못하고 피로에 빠지게 된다.

 

3. 그래서 뇌엔 여백이 필요하다.

앞서 보았듯 우리의 뇌는 조정신경망과 비조정신경망을 번갈아 사용해야 한다.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조정신경망만을 계속 쓴다면 뇌가 과부하 되어 제대로 된 일 처리를 하지 못한다. 물론 비조정신경망만 쓴다고 해도 효율적인 일 처리를 기대할 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 신경망을 번갈아 사용함으로써 쓰지 않는 신경망에 휴식, 즉 여백을 줄 필요가 있다. 
현대인은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 역시 멀티태스킹이며 기업에서는 일 하지 않고 쉬는 걸 죄악으로 여긴다. 그 와중에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많은 국가는 한국이다. 그러한 현대인 중 가장 신속하고 많이 일하는 것이 한국인인 것이다. 신속한 처리와 많은 노동량, 이런 특징들 때문에 한국 직장인들은 조정신경망이 극도로 발달하여 있는데 이러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2012년 기준 OECD 전체 평균의 66% 수준에 머무른다. 즉, 시간 대비 효율적인 노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 신경망만을 사용했을 때 일어나는 결과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뿐 아니라 과도하게 조정 신경망을 쓴 탓에 소진 증후군, 소위 ‘과로’는 직장인들의 친구이다. 이렇듯 우리는 조정신경망만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 경영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disconnect to connect’, ‘연결을 위한 단절’ 훈련을 한다고 한다. 즉, 뇌에 휴식을 줌으로써 뇌를 충전하여 다시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마련하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 외에도 해외 여러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충분한 휴식 시간과 휴가를 보장하는 회사 내규를 만들고 있다.  
물론 비조정신경망만을 사용했을 때도 문제는 발생한다. 정신분열증 같은 정신 질환은 이 비조정신경망이 과도하게 사용되었을 때 일어나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 비조정신경망은 공상이나 잡념을 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망이다. 비조정신경망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즉 공상, 잡념만을 계속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그것은 곧 정신분열증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조정신경망과 비조정신경망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균형이 깨지면 뇌에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몸이 힘들지 않다고 해서 뇌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그저 쉬는 것이다. 주중에 열심히 일을 하고 적어도 주말 이틀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누워서 쉬는 것이 가장 좋다.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하거나 자신이 느끼기에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된다. 주중에도 업무를 마치고 나서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는 쉬는 것이 다음 날 업무에 더욱 도움이 된다. 이렇게 삶에 여백을 주는 것이 바로 뇌에 여백을 주는 것이고 그러한 여백이 결국 좋은 삶을 가져다줄 것이다.

 

뇌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그런 뇌가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휴식, 여백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백 없이 무리한다면 뇌는 지치게 되고 그 결과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일해야 한다는 부담은 떨쳐 버리고 힘들 땐 일단 쉬자.

임창열  cy11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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